
아마존에서 ‘검색해서 구매한다’는 소비 행동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OpenAI와 Perplexity 등 AI 기업들이 아마존의 검색창을 거치지 않고, 브랜드에서 직접 상품을 구매하도록 돕는 기능을 연달아 도입했다. 이러한 ‘AI 에이전트’ 기반의 구매 대행은 기존 이커머스 강자가 구축한 검색 연동형 광고 모델을 근본부터 흔들며, 실리콘밸리에서는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D2C(소비자 직접 판매) 시장이 성장하면서 쿠팡·네이버쇼핑 등을 거치지 않고 브랜드 자체 채널에서 구매하는 흐름이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아마존은 이미 “유일한 입구”가 아니라 여러 채널 중 하나, 혹은 단순한 “물류 인프라”로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최신 데이터와 일본 시장 구조 변화를 함께 들여다보며 ‘아마존 독주 시대’의 종언과 그 이후 이커머스 시장의 새로운 패권 싸움을 분석한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변화, AI가 아마존을 우회한다
미국 테크 업계에서는 지금 ‘Amazon Bypass(아마존 건너뛰기)’라는 말이 현실감을 띠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쇼핑의 입구를 바꾼다
2025년 주요 AI 기업들은 ‘에이전트형 커머스’ 기반을 완성했다. OpenAI는 ChatGPT에 직접 결제 기능을 심어, 사용자가 “캠핑용 텐트 찾아서 3만 원 이내로 평판 좋은 거 사줘”라고 입력하면 여러 사이트를 비교해 결제까지 완료하는 구조를 갖췄다.
주목할 점은 OpenAI가 Target·Instacart 같은 대형 유통사와 직접 제휴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소비자는 아마존의 방대한 검색 결과에서 스폰서 광고를 헤치며 상품을 찾는 수고에서 해방됐다. ChatGPT 화면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쇼핑을 끝낼 수 있게 됐다.
‘아마존 건너뛰기’의 본질은 광고 수익 모델에 대한 타격
이 변화가 아마존에 치명적인 이유는 수익 구조 때문이다. 아마존의 2024~2025년 광고 매출은 연간 600억~7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며, 대부분이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시키는” 검색 연동형 광고다.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인간처럼 화면의 광고를 ‘보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AI는 백엔드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의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최적의 답’만을 제시한다. 아마존이 Perplexity를 상대로 콘텐츠 무단 사용이나 스크래핑 문제를 제기하는 근본적 이유는, 자사 검색 생태계, 즉 광고 수익원이 우회되는 것에 대한 강한 위기감 때문이다.
아마존도 스스로 ‘우회’에 뛰어드는 모순
아마존 자신도 방어책으로 묘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Shop Direct’와 ‘Buy for Me’ 기능의 시범 운영이다. AI가 다른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상품을 알아서 찾아 아마존 인터페이스 안에서 결제까지 마치게 한다.
하지만 2025년 후반 들어 독립 판매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내 브랜드 사이트 상품이 허락 없이 아마존 AI에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까지 빠져나간다”는 주장이다. 다른 기업이 아마존을 우회하는 것은 문제 삼으면서, 아마존이 다른 사이트를 우회해 상품을 끌어오는 것은 허용한다는 이중잣대다. 이는 시장 지배자의 초조함을 보여주는 장면으로도 보인다.
IT 저널리스트 고다이라 다카히로는 “지금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검색엔진 교체가 아니라 구매 의사결정의 주도권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아마존 알고리즘이 소비자 눈앞에 어떤 상품을 보여줄지 통제해왔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그 통제권이 사용자 손안의 AI로 옮겨가고 있다. 이는 20년간 이어진 플랫폼 비즈니스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변화”라고 분석했다.
데이터로 보는 에이전트형 커머스의 규모
이 변화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숫자가 심각성을 말해준다.
성장 속도가 예상을 넘어섰다
미국 조사기관 eMarketer의 최신 추정에 따르면, AI 에이전트 경유 이커머스 거래액은 2026년 2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맥킨지는 더 강하게 예측해 2030년까지 세계 에이전트형 커머스가 3조~5조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2025년 사이버위크의 충격
2025년 연말 쇼핑 시즌인 사이버위크에서도 충격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온라인 주문 전체의 약 20%가 어떤 형태로든 AI 추천이나 에이전트 기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쇼핑 사이트로의 AI 챗봇 트래픽은 전년 대비 약 7배(670% 증가)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의 ‘찾는 방식’은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으로 번지는 변화, 붕괴인가 역할 축소인가
미국에서 시작된 변화는 시간차를 두고 일본 시장에도 밀려오고 있다. 다만 일본에는 일본만의 시장 구조가 있다.
D2C 시장의 본격 도약과 ‘플랫폼 탈피’
일본 D2C 시장은 2026년 약 3조 엔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아마존에 올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SNS로 팬을 모으고 자사몰로 직접 유도하는 방식이 완전히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Mr. CHEESECAKE’는 철저한 브랜드 세계관과 SNS 화제성을 앞세워 아마존이나 라쿠텐에 기대지 않고도 자사몰만으로 큰 매출을 올렸다.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하고, 고객 생애가치를 높이는 전략의 대표 사례다.
맞춤형 샴푸 브랜드 ‘MEDULLA’도 비슷하다. 이 브랜드는 진단 과정을 통해 사용자와 직접 연결된다. 플랫폼의 획일적인 검색 결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개인별 고민 해결’이라는 메시지를 앞세워, 아마존의 가격 비교 경쟁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경제권을 만들었다.
일본 특유의 ‘포인트 경제권’이라는 장벽
다만 일본에서 아마존이 곧바로 몰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라쿠텐 경제권, PayPay 경제권처럼 강력한 포인트 생태계가 소비자를 플랫폼에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AI 대 플랫폼’ 구도라면, 일본은 ‘AI·D2C·포인트 경제권’이 맞물리는 구조다. 소비자는 용도에 따라 구매 채널을 나눠 쓰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물류라는 마지막 보루
아마존에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물리적 강점이 있다. 바로 물류망이다. 다음 날 또는 당일 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는 여전히 강력하다.
AI가 최적의 상품을 찾아주더라도 배송에 3일이 걸리는 사이트보다, 클릭 한 번으로 몇 시간 뒤 받아볼 수 있는 아마존을 결제·배송 인프라로 선택하려는 소비자는 여전히 많다.
이커머스 시장의 ‘다음 경쟁 축’은 무엇인가
앞으로 이커머스 비즈니스에서 기업의전략은 두 가지다.
첫째는 SEO에서 GEO로의 전환이다. 지금까지는 구글이나 아마존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기 위한 SEO, 즉 검색엔진 최적화가 중요했다. 앞으로는 AI 에이전트에게 선택받기 위한 GEO, 즉 생성형 엔진 최적화가 필요하다. AI가 상품 데이터를 정확히 이해하고 추천 목록에 넣을 수 있도록 구조화된 데이터를 정비하는 일이 기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둘째는 자사 채널 보유 가치다. 아마존이 중소 브랜드 상품을 ‘Buy for Me’로 무단으로 올리는 리스크는, 플랫폼 의존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고객과 직접 연결되는 접점, 즉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가진 기업만이 AI의 단순한 가격·스펙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다이라는 “앞으로 EC는 편리함은 플랫폼, 경험은 자사몰이라는 양극화가 빨라질 것”이라고 봤다.
그는 “아마존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수도나 전기 같은 존재가 되고, 감성적 가치를 가진 브랜드는 AI를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갈 것”이라며 “이제 승부는 어디에 입점하느냐가 아니라, AI에 어떻게 인식되고 팬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아마존 건너뛰기’가 던지는 질문
‘아마존 건너뛰기’의 본질은 단순한 도구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소비자와의 접점을 쥐느냐’는 이커머스 시장의 권력 구조 변화다.
AI 기업은 개인 쇼핑 컨시어지처럼 움직이고, SNS는 영감을 주며, D2C 브랜드는 열광을 만든다. 이런 다층 구조 속에서 아마존은 과거의 ‘전능한 플랫폼’에서 하나의 ‘고도화된 물류 사업자’로 바뀌도록 압박받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도 2026년은 이 흐름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플랫폼을 인프라로 똑똑하게 활용하면서도, AI에 선택받는 데이터 전략과 플랫폼에 기대지 않는 팬 기반 구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아마존을 ‘건너뛰는’ 시대. 그것은 브랜드가 다시 소비자와 직접 마주하는 진짜 개인화 상거래 시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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