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동관·HD현대 정기선 오랜 절친
한국형 차기 구축함 관련 양사 전면전 돌입
형사고발 등 양사 분위기 긴장된 상태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과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은 오랜 ‘절친’ 관계로 재계에서 유명하다.
비슷한 나이대인 데다가, 경영 2세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또한 서울 장충초 동창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경영 전면으로 부상한 80년대생 오너 3세’라는 점도 두 사람을 묶는 키워드로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16년 김 회장이 모친상을 겪었을 때 장례식을 찾은 정 부회장은 취재진에 “동관이 친구라서 오게 됐다”고 전한 일화도 유명한 사실이다.
이를 답하듯 김 부회장도 코로나19 팬데믹이 가 한창이던 2020년 정 부회장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두터운 친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랜 친분으로 알려진 김 부회장과 정 부회장은 최근 경영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올해 3월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계열사인 한화오션은 최근 HD현대중공업 임원 몇 명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발과 관련하여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를 주장하며 경찰에 고발했다.
재계 서열 10위권 이내의 거대기업이 공개적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며 전면전에 돌입한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앞서 다른 산업영역에서 지난 2020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사이에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두고 법정 싸움을 벌인 ‘배터리 대전’ 후 4년 만에 발생한 일이다.
한화와 현대 양사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격앙된 상태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공개 의견문을 통해 “직원들에게 명령해 군사기밀을 훔쳐내고 꼬리 자르기를 벌였다”고 HD현대중공업을 공개적으로 비난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올해 3월 서울과 경남에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고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는 등 여론전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수사 기록을 짜깁기한다” “억지부리는 주장”이라며 맞대응해 업계에서 뜨거운 화두였다.
특수선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을 가진 두 회사의 갈등이 KDDX 수주전을 계기로 갈등의 끝을 향한 것은 예고된 일이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아 크게 경쟁할 일이 없었던 김 부회장과 정 부회장이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즉 조선업에 발을 들인 후 특수선 분야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 구도에 들어간 셈이다. 한화오션 인수 후 한화와 HD현대는 여러 차례 이어져 각종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중 한 예시로 2022년 말 STX중공업 인수 과정에서도 양사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으나 한화가 빠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반대로 지난해(2023년) 울산급 배치Ⅲ 호위함 5·6번함 건조사업을 따내는 치열한 싸움에는 수주전 끝에 한화오션이 승기를 잡았다.
이 결과로 당시 HD현대는 결과에 반발해 방위사업청에 이의 제기를 신청했고, 법원과 국민권익위원회에도 각각 가처분 신청과 고충 민원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건강한 경쟁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이 형사고발이라는 초강수까지 퍼진 모양새다.
두 회사 모두 초강수를 두는 이유는 KDDX 수주전에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KDDX는 오는 2030년까지 7조 8,000억 원의 막대한 재원을 들여 6,000t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연례 없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방산업을 한화 그룹 주력사업으로 성장하려 하는 김 부회장 입장에서는 해당 프로젝트로 단숨에 특수선 분야 최강자로 떠오를 기회를 절대 쉽게 내어줄 리 없다.
더하여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 인수 과정에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보이며, 차기 총수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 데다 인수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국제해양방위산업전의 한화오션 전시관에 기자간담회를 개최 했을 정도로 한화오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해당 간담회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으로 알려졌다.
모처럼 찾아온 반가운 조선업 호황기에 세계 1위 조선업체로서의 위치 굳히기를 돌입해야 하는 HD현대 입장에서도 KDDX는 꼭 가져와야 하는 사업이다.
HD현대는 3월 발표한 의견문에서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물량은 이지스 구축함 2·3번함 정도만 남았는데, 2번함은 내년 1월 진수식을 앞두고 있어 2025년에 들어서면 3번함 1척만 남게 된다”며 “규모가 작은 수출 물량으로는 필리핀 원해경비함 등 만이 남아있다”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KDDX 수주에 져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오랜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두 경영자이지만 당분간 싸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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