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북한 평가 보고서
생물·화학 무기 개발 유지
북한 제조 역량 충분해
미국 정부가 북한이 생물학 무기를 이용한 비정규전을 위해 유전자 조작 관련 기술을 꾸준히 축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견하는 보고서에 나온 평가로 지난해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2023 생물학방어 태세 검토’ 보고서에 이어 2번째로 북한의 생물·화학 무기 제조가 가능함을 시사해 충격이다.
이어 북한 측이 유전자 조작으로 백신이나 해독제가 없는 병원체를 유포해 ‘생화학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되며 주목받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15일 미국 국무부는 ‘2024 군비통제·비확산·군축 합의 이행 보고서’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생물학 무기로 쓰일 수 있는 박테리아·바이러스·독소 생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북한의 국가과학원 등이 유기체의 DNA를 변경하고 삽입하는 등의 유전자 가위 관련 능력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생물학 무기와 관련해 유전자를 조작하는 제한적 능력이 있다. 박테리아 등을 생산하는 기술적 능력이 있을 수 있다”라고 평했던 것과 달리 이번 보고서에는 “북한이 능력을 보유했다”라고 확신을 가진 평가를 한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단정적인 평가를 한 이유는 북한의 생물학 무기 관련 기술 수준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보고서를 매년마다 발표하는 미국 국무부는 자국의 정보기관, 합동참모본부와 협력해 북한·이란·러시아 등의 핵 활동과 생물학 무기 개발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예의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생물학 무기를 분사기나 독성 펜(poison pen) 주입기 등을 통해 쓸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측은 꽤 오래전부터 북한이 무인기를 활용한 독가스의 공중 살포, 한강의 유류를 활용한 독성물질 수중 살포 등 직접적인 대치가 아닌 비정규전을 시도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이 가운데 특히 유기체의 특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해독제나 백신이 없는 세균 등을 유포한다면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워 더욱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런 이유로 다양한 국제 협약을 맺어 사용을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이 핵무기 뿐만 아니라 생물·화학 무기 개발을 지속해서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염성이 있는 병원체를 활용하는 생물학 무기와 미생물·독소를 쓰는 화학 무기는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가 제시한 보고서의 근거로 삼고 있는 1975년 발효된 유엔의 ‘생물무기 금지 조약(BWC)’에 따라 생물학 무기와 화학 무기를 함께 금지하고 있어 ‘BW 모니터링’은 두 가지를 모두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측이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학 무기는 세균의 경우 탄저균·콜레라균, 바이러스는 일본뇌염·에볼라 바이러스·천연두 등이며, 독소는 보툴리눔이나 신경성 맹독 VX 등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VX는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할 당시 썼던 독극물로 가벼운 신체 접촉만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성물질이다.
이런 탓에 한·미 싱크탱크인 미국 랜드 연구소와 한국 아산정책연구원은 지난 2022년 북한의 생물·화학 무기에 관해 분석한 공동 보고서에 “북한 특수부대가 에어로졸 분사기를 이용해 사린 독가스를 수도권에 살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생물·화학 무기는 여기에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탄저균·보툴리눔 독소·유행성 출혈열·폐 페스트 등 10여 종의 생물학 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과는 유전자 가위 등 조작을 통해 개발된 새로운 병원체는 포함하지 않아, 실제로 북한이 보유한 생물·화학 무기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생화학 무기 보유량을 최소 2,500t에서 5,000t 이상 추정했으며 이를 야포나 탄도미사일, 무인 항공기, 특수작전부대 등을 이용해 살포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북한이 탄저균 10㎏을 한낮 서울 상공에서 터뜨린다면 최대 22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2.5kt 상당의 공중 폭발 핵무기를 터뜨렸을 때의 추정 사상자 12만 5,000명보다 더 큰 규모의 피해로 판단된다. 또한, 북한이 신경작용제 ‘사린(Sarin)’ 2t을 서울과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 뿌릴 경우 영향 면적은 7.8㎦에 사상자는 약 25만 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한 보고서가 지난해 발표된 바 있다.
지난해 통일연구원 박은주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동아시아 다중 안보 위기 속 북한의 비대칭전력 증강이 가지는 의미’에 따르면 북한이 생화학 무기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효율성으로 꼽은 바 있다. 일명 ‘가난한 자의 핵무기’로 통칭하는 생물무기가 기술적으로 제조가 쉽지만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인명 살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현재 정주·문천 등 총 17개소에서 생물무기 연구 및 배양·생산시설을 가동하고 있으며, 탄저균·천연두·페스트·콜레라·보툴리눔 등 5종의 바이러스 무기화에 성공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비해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와 도상 훈련을 하며 군의 초동 조치, 상황관리, 분석과 검증 등 전반적인 대응 절차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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