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축소로 VOA 존폐 위기
비판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
“김정은이 환영할 것“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선전전에 대항해 설립된 후 영국 BBC 해외방송과 함께 주요 심리전 수단으로 활약했던 미국의 역사적인 방송국이 신규 방송을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미디어국(USAGM)을 구조조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83년 만에 방송을 중단해야 했던 방송국은 바로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다.
VOA는 신규 방송 중단 전까지 북한, 중국, 이란 등 언론 통제 국가의 수용자 3억 6,000만 명에게 48개 언어로 해외 뉴스를 전하고 독재 정권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 왔다. USAGM 산하 조직으로 중국의 인권 유린 실태를 폭로해 온 자유아시아방송(RFA)도 방송이 중단됐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신장 위구르 지역에 수용소가 있으며, 인권침해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언론인에 대한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백악관에서는 이들 방송이 급진적인 프로파간다를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강경책을 사용한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제 VOA는 반트럼프 성향이 강한 매체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보도 내용에 불만을 자주 표명해 왔다.
USAGM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강경 우파 정치인인 캐리 레이크가 특별 고문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레이크 고문은 전날 성명에서 “난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라며 “이 기구에는 낭비, 사기와 남용이 만연하며 미국 납세자가 자금을 제공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 같은 행동에 미국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조치로 중국과 이란 등 권위주의 정부만 이득을 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칼럼을 통해 “미국이 권위주의 정부 손에 놀아나선 안 된다”라며 “VOA를 폐국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8일 트럼프 행정부가 비판한 VOA의 행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진행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VOA에 대해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 않도록 지시했으며, VOA 직원들은 SNS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VOA 모회사에는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금지하는 정책이 없다.

한국계 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인 영 김 또한 “김정은에게 희소식”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대해 쓴소리를 뱉었다. 그는 “USAGM을 없애는 것은 답이 아니다”라면서 “USAGM을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소프트파워라는 원래 목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VOA 통제 소식에 중국과 러시아 등의 나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방송처 예산 삭감 조치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7일(현지 시각) 사설을 통해 “자유의 등대라고 불리던 VOA가 더러운 걸레처럼 자국 정부에 의해 버려졌다. VOA는 시대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러시아 언론 모스크타임즈는 지난 18일 보도에서 “러시아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VOA 등의 언론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에 기뻐하고 있다”라며 “크렘린에서는 공식적으로 ‘VOA는 선전 매체이며, 우리에게 특별히 문제되지 않는다’라고 밝혔지만, 비공식적으론 환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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