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상급법원 배심원단은 3월 25일 메타와 구글에 대해 총 600만 달러(약 91억 원)의 배상을 명령하는 평결을 내렸다.
원고는 20세 여성(가명 케일리)로, 그녀는 6세부터 유튜브, 9세부터 인스타그램을 쓰다 10세 무렵부터 불안과 우울증이 발생했다.
배심원단이 ‘유책’으로 판단한 근거는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의 ‘설계 자체’였다.
이 평결이 있은 지 이틀 뒤 뉴멕시코주는 메타에 3억7,500만 달러(약 57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국 내 집단소송은 연방 차원에서 235건을 넘고, 학군이 제기한 소송만 해도 250건이 넘는다.
법정에 제출된 내부 문서에는 ‘10대를 대거 확보하려면 초등학생 때 끌어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문건도 포함되어 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이 택한 전략은 SNS 관련 소송의 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그동안 플랫폼을 제3자 콘텐츠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보호해 왔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알고리즘 설계라는 ‘제품 자체의 결함(Product Liability)’을 핵심 이슈로 삼아 그 보호 장벽을 우회했다.
마케팅 경제 연구자 와타나베 쇼고는 “이번 판결은 플랫폼의 법적 면책 범위에 처음으로 분명한 한계를 그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는 담배 산업이 중독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1990년대 대형 소송에 맞먹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체류 시간’이 곧 ‘수익’이다
SNS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핵심은 사용자의 ‘주의(attention)’를 광고 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앱을 열어 보내는 1초, 1초가 직접적으로 광고 매출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푸시 알림, 좋아요의 불확실한 보상 구조 등은 우연이 아니다.
2024년 Nature Human Behaviour에 실린 연구는 “무한 스크롤 피드가 도박과 유사한 도파민 보상 회로를 활성화한다”고 보고했다.
즉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설계는 슬롯머신과 같은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와타나베는 “플랫폼이 채택한 많은 설계는 행동심리학과 신경과학의 발견을 의도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와타나베는 “이용자에게 유익한 개인화를 제공하는 것과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침식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윤리적 경계가 있다”고 얘기한다.
또한 “하지만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 경계를 지속적으로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는 ‘설계의 윤리’를 묻기 시작했다
법적·정책적 압박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주는 2025년 12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다. 이를 위반한 플랫폼에는 최대 5,000만 호주달러(약 5천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프랑스와 스페인도 연령 제한을 공언했고, 인도네시아는 2026년 3월 28일부터 유사 규제를 시행했다.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다크 패턴’과 중독을 유발하는 설계에 강력한 제재를 추진 중이며,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에 이르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다만 규제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호주 시행 후에도 13~15세의 20% 이상이 금지 대상 앱에 계속 접근했다는 데이터가 있다.
와타나베는 “금지만으로는 문제를 지하로 숨길 뿐, 본질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보이지 않는 비용, 생산성 손실
SNS 과다 접촉이 초래하는 손실은 정신건강 치료비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SNS로 인한 직장 내 생산성 손실이 연간 약 1조 달러(약 1500조 원)에 달한다는 Zippia Workplace Statistics의 추정이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연구는 알림으로 인한 방해에서 회복해 다시 집중하기까지 평균 23분 15초가 걸린다고 밝혔다.
DataReport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억1,000만 명이 SNS 의존 경향을 보인다고 보고되며, 현대 직장인이 스마트폰 알림 등으로 소비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1시간에 이른다.
지식 노동자에게 이는 ‘생각할 시간’이 없어지는 문제다.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디지털 격차’의 역전이다.
고소득 계층은 자녀를 디지털 기기에서 일부러 분리하는 교육 환경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자녀를 스크린 없는 학교에 보내는 사례는 이미 10년 전부터 보고됐다.
반면 저비용 여가 옵션이 적은 계층일수록 알고리즘에 장시간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주의를 빼앗길 위험’ 자체가 새로운 불평등의 축이 되고 있다.
직장인에게 필요한 ‘주체성 회복’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핵심은 SNS를 전면 부정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자신의 행동이 알고리즘에 의해 부분적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2025년 연구는 ‘나는 중독됐다’는 꼬리표를 지나치게 붙이면 자기효능감이 떨어져 통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만 보지 말고 ‘환경 설계의 문제’로 외재화해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는 알림 최소화, 팔로잉 목록의 적극적 정리, 앱 차단기 도입 등 ‘마찰 설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습관 연구에 따르면, 의지력에만 의존한 제한보다 앱 접근 자체를 물리적·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 집단이 일상적 SNS 사용 시간을 평균 68% 줄였다는 결과가 있다
또 하나의 전략은 추천 알고리즘을 ‘소비’가 아니라 ‘학습’ 방향으로 재설정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피드를 학습한다. 관심을 지속적인 학습이나 전문 지식 습득으로 유도하면 같은 알고리즘을 자기개발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설계의 윤리’와 인간의 ‘선택 자유’
로스앤젤레스 판결이 곧 SNS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설계’로 전환할 계기가 될 수 있다.
피처폰 시대의 인체공학 규제가 결과적으로 더 안전하고 쓰기 쉬운 제품을 낳았듯, 법적·사회적 압력이 제품 설계를 진화시키는 사례는 존재한다.
개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셀프매니지먼트다. SNS는 현대 사회의 인프라이며, 비즈니스 인력이 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선택은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알고리즘이 ‘최대 참여’를 목표로 설계되어 있는 한,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을 계속하면 자신도 모르게 사고의 깊이와 시간을 저가로 팔아넘기게 된다.
질문은 단순하다. 오늘 당신은 자신의 의지로 SNS를 열었는가, 아니면 어느새 화면이 열려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알고리즘과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되돌아보는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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