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포인트
치매에 따른 자산 동결이 확산되면서 2030년에는 금융자산만 500조 엔(약 4천 700조 원), 부동산을 포함하면 533조 엔(약 5천 조 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계좌 동결은 요 비용 납부·부동산 매각·증권 운용을 막고 가족의 생계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가족신탁이나 임의후견, 신탁 상품 등 사전 대책의 유무가 결과를 가르며, 아무런 준비 없이 동결된 경우 전문직 후견인에게 평생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어머니가 요양시설 입소를 결정한 직후였습니다. 입소 일시금을 송금하려 했는데 은행 창구에서 ‘현재 어머님의 판단 능력으로는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의 절망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도쿄에 사는 50대 회사원 A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어머니의 예금 계좌에는 평생 모은 2000만 엔(약 1억 9천만 원) 가까운 자산이 있었다. 그러나 치매가 진행돼 본인의 의사 확인이 어렵다고 판단된 순간, 그 돈은 사실상 ‘동결’됐다. 결국 A씨는 자신의 저축에서 수백만 엔의 입소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이런 ‘자산 동결’의 비극이 일본 전역에서 조용히 퍼지고 있다.
●목차
533조 엔이 잠든다…일본 경제 흔드는 ‘치매 머니’ 문제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의 2024년 추산에 따르면, 치매 고령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2030년 500조 엔(약 5천 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부동산 등을 포함한 전체 자산 규모는 533조 엔(약 5천 7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약 630만 명이던 치매 환자 수는 2050년에는 1,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며, 더 이상 ‘우리 집은 괜찮다’고 장담할 수 있는 가정은 거의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제활동인구 세대의 인식 격차다. 45~65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치매로 인한 자산 동결 위험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약 70%에 달했지만, 실제 해결책인 ‘가족신탁’에 대해”들어본 적 없다”고 답한 비율은 25%를 넘었다.위험은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격차가 향후 가정 붕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계좌 동결’의 불합리함…왜 가족도 부모 돈을 못 건드리나
은행은 왜 부모의 간병비에 쓰겠다는 가족의 출금 요청까지 거부할까. 그 배경에는 ‘사적 자치의 원칙’이라는 법적 장벽이 있다.
은행이 “본인의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거나 확신할 경우, 부정 인출이나 친족 간 분쟁을 막기 위해 계좌를 동결한다. 창구에서 비밀번호를 여러 차례 틀리거나, 은행 직원과 정상적인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상황이 계기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번 동결되면 그 영향은 예금 계좌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식과 투자신탁을 운용하지 못해 시장이 폭락해도 팔 수 없다. 자택을 팔아 요양시설 비용에 보태고 싶어도 본인의 의사 확인이 되지 않으면 매매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공공요금이나 대출 상환 계좌에 잔액이 부족해도 다른 계좌에서 돈을 옮기기 어렵다.
상속 전문 법무사 쓰쿠이 사쿠는 “금융기관은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계좌를 동결한다. 그러나 그 조치가 결과적으로 본인의 생활을 돌보는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괜찮다”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대책을 미루는 이유는 “아직 건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즉 MCI 상태인 사람 가운데 약 10%는 1년 안에 치매로 진행된다는 데이터가 있다.
반면, 적절히 대응하면 인지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도 14~44%가량 남아 있다. 즉, ‘건강할 때’라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자산 동결을 막는 대표적인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가족신탁이다. 신뢰할 수 있는 가족에게 재산 관리 권한을 맡기는 방식이다. 부모가 치매에 걸려도 자녀가 부모의 예금을 인출해 간병비로 쓸 수 있고, 자택 매각도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다만 공증과 법무사 비용 등 초기 비용으로 30만~80만 엔(약 280만~750만 원) 정도가 들 수 있고, 가족 간 합의가 필수다.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상속 분쟁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둘째는 임의후견제도다. 건강할 때 향후 치매가 생겼을 경우 후견인을 스스로 정해두는 제도다. 가정법원이 감독하기 때문에 부정행위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임의후견감독인에게 매달 1만~3만 엔(약 10만~30만 원) 정도의 보수를 사망 시까지 지급해야 한다.
셋째는 대리인 지정이나 신탁 상품이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의 ‘100년 패스포트’ 같은 상품이 대표적이다. 사전에 대리인을 지정해 생활비나 간병비를 인출할 수 있도록 해두는 방식이다. 은행 창구에서 절차를 마칠 수 있고 초기 비용도 비교적 낮다.
넷째는 증권사의 특약 서비스다. 예를 들어 일부 증권사는 치매 발병 이후 가족이 투자신탁 해지와 출금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계약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방치하면 전문직 후견인 비용이 평생 따라붙는다
아무런 대책 없이 자산이 동결되면 남는 선택지는 법정후견제도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거운 현실이 있다. 현재 친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되는 경우는 전체의 약 19%에 불과하다. 나머지 약 80%는 법무사나 변호사 같은 외부 전문가가 선임된다.
이 전문가에게 지급하는 보수는 월 3만~6만 엔(약 30만~60만 원) 정도다. 이 비용은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본인의 자산에서 계속 빠져나간다. 10년이면 500만 엔(약 4,8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부모와의 ‘돈 이야기’를 해야한다
쓰쿠이는 “많은 상담을 받으며 절감하는 것은 기술적 대책 이전에 대화를 어떻게 꺼낼지에서 막히는 가정이 많다는 점”이라며 “재산 이야기를 ‘죽은 뒤의 이야기’로 꺼내면 갈등이 생기기 쉽다. ‘아버지가 100세까지 자신답게,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쓸 수 있게 준비하자’는 긍정적인 맥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모가 건강할 때 확인해야 할 항목도 있다. 통장 위치와 계좌 수, 부동산 권리증 유무, 정기 지출 내역, 앞으로 어떤 시설에 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희망, 주치의나 세무사 등 신뢰할 수 있는 상담처다.
자산을 지킨다는 것은 존엄을 지킨다는 뜻
자산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줄이지 않는 일이 아니다. 위급한 순간에 본인의 존엄을 지키는 돌봄을 위해 본인의 자산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다.
“아직 이르다”는 말은 훗날 자신과 가족에게 무책임한 말이 될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첫걸음은 거창하지 않다. 부모의 주거래 은행을 확인하고, 대리인 지정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재산이 어디에 있는지 간단한 목록을 만들고, “만약의 경우 집에 있고 싶은지, 시설에 들어가고 싶은지”를 묻는 대화도 필요하다.
치매는 개인의 건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의 생활비, 간병, 상속, 부동산, 투자자산을 한꺼번에 묶어버릴 수 있는 경제 리스크다. 준비가 빠를수록 선택지는 많아진다.
(문=BUSINESS JOURNAL 편집부, 협력=츠쿠이 사쿠/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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