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겪는 ‘전화 공포증’
SNS‧메신저 사용 익숙한 탓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노출돼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2004년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어 주목된다. 오죽하면 젊은 층에서 흔하게 보이는 병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것일까.
20대 직장인 A씨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아는 번호이더라도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말해달라고 답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수단은 무조건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하고 행정 처리와 업무 등도 가능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언론사에 다니고 있는 20대 B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할 때 주로 메신저를 이용한다.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 관리소장 등에 전화가 왔을 때도 문자로 보내달라고 답한다.
20대 직장인 C씨는 업무 특성상 거래처와 통화가 잦은 편인데, 입사한 지 꽤 됐지만 아직도 전화를 걸기 전엔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된다. 그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으면 머리가 하얘지고 당황하게 된다. 아무리 전화해도 적응이 안 되고 오히려 불편함만 늘었다”고 토로했다.
이는 최근 청년 세대들이 겪고 있는 ‘전화 공포증’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등으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익숙한 MZ세대 등 젊은 층이 전화 통화를 할 때 느끼는 불안감을 말한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분야에서 비대면이 익숙해진 것도 한몫한다.
해외에서는 이를 ‘콜 포비아(Call phobia)’라고 부른다. 전화를 뜻하는 콜과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의 합성어다. 전화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생겨난 전화 통화 기피증을 뜻한다.
최근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SNL 코리아’에서도 이를 풍자했다.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면접을 보는 것이 아닌, 현실을 뒤집어 아르바이트생이 사장을 면접해 보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때 아르바이트생은 “최고의 배려는 전화를 아예 하지 않는다. 왜냐? 요즘에는 ‘전화 공포증’이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비대면과 SNS 등에 익숙해진 MZ세대에게 나타난 새로운 현상 및 변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의 한 경제매체는 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이 이러한 공포증으로 인해 업무통화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으며, 소통상의 비효율이 뒤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전화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고 퇴사하는 젊은 사원이 늘자,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전화 대응법’을 교육하고 나섰다.
국내에서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전화가 익숙한 기성세대의 조직 문화와 젊은 층이 충돌하고 있다. 예고 없이 울리는 전화가 두려운 MZ세대에게는 기성세대의 전화가 불편하기만 하다. 전화 업무를 이유로 퇴사하는 젊은이들까지 생기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기술을 알려주는 업체까지 나타났다. MZ세대에게 시간당 60만 원가량을 받고 통화 기술을 알려주는 업체다.
최근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컨설팅 회사 ‘더 폰 레이디’를 소개했다. 이 업체는 전화 공포증을 겪는 MZ세대가 근무 중에 업무 통화를 할 수 있도록 기술을 알려준다.
1대 1 코치 서비스의 경우 가격은 무려 시간당 480달러(한화 약 60만 원)이다. 온라인 컨설팅 서비스도 있는데, 30분당 365달러(한화 약 46만 원)다.
컨설팅 방법도 독특하다. 상담을 시작하면 3일간 모든 문자 메시지를 중단하고, 지인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역할극을 진행하거나 무작위로 전화해 대화하는 연습을 한다.
더 폰 레이디 설립자는 언론을 통해 “이메일은 즉각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이 아니고 상대방의 목소리나 말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관계를 쌓기 힘들다. 전화는 관심과 열정을 표현하는 데 매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문화 평론가는 “MZ들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생각해보는 소통 습관이 있다. 콜 포비아가 특히 두드러지는 경우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을 때다. 친구, 연인과의 통화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이어 “청년 세대는 대개 온라인 소통을 하면서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MZ세대들은 SNS 계정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소통하거나, 반대로 아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하는 ‘상호 익명성’에 익숙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화 기피 현상이 가벼운 사회불안과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면보다는 전화가 간접적이고 전화보다는 문자가 더 간접적인데, 간접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것은 관계에서 불편‧불안을 느껴서라는 설명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고, 대면하는 장치를 섞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면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점점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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