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여동생 위해 만들었다가 강남 사모님들 선호 브랜드 1위까지

살바토레 페레가모,
여동생 위해 처음 구두 만들어
헐리우드 스타들도 사랑해

한국이 2018년 패션 종주국인 프랑스를 제치며 세계 명품 가방 시장 규모 4위에 올랐습니다. 해외 명품 시장에서 한국은 불황이어도 잘 팔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요. 선진국 시장조사 기관들 사이에서 한국은 ‘유럽 명품 브랜드들의 리트머스시험지 같은 나라’라고 불릴 정도죠. 한국에서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로는 샤넬, 구찌, 에르메스, 루이비통, 롤렉스 등 다양합니다.

이런 명품 브랜드들은 유명한 만큼 숨겨진 뒷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코코 샤넬은 나치의 스파이라는 말이 있고, 구찌오 구찌는 호텔의 벨보이였죠. 에르메스는 유럽에서 마구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했고요. 오늘 소개할 명품 브랜드는 여동생을 위해 구두를 만들었던 것을 계기로 세워진 패션 회사입니다. 이 브랜드는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명품 패션 브랜드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착용감이 매우 편안한 구두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패션 브랜드보다는 농협과 닮은 로고로 더 유명한데요. 이 로고는 창립자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본사 건물 문에서 화려한 철제 조각과 말띠를 위해 손으로 짠 후크를 발견하고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작은 고리를 뜻하는 ‘간치니’라고 불리며, 페라가모의 대표 상품에는 모두 이 로고가 붙죠.

페라가모의 대표 상품으로는 바라 슈즈, 웨지 힐, 간치니 핸드백 등이 있는데요. 특히 ‘바라 슈즈’는 세계 시장에서 백만 켤레 이상 판매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강남 사모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발 브랜드 1위를 차지했었죠.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받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898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마을인 보니토에서 14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습니다. 9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교회 성찬식에 신을 신발이 없었던 여동생을 위해 처음 구두를 만들죠. 이것을 계기로 11살에 나폴리의 작은 구두점에서 수습공으로 일하게 됩니다. 13살의 페라가모는 자신의 집 한편에 여성용 맞춤 구두 가게를 오픈할 정도로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답니다.

16살에는 형제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919년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지역에 구두 제조 및 수리점을 엽니다. 처음에는 작은 가게였으나 페라가모의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에 카우보이 부츠를 납부하게 되는데요. 이를 계기로 1923년, 페라가모의 구두가 할리우드에 진출하죠. 그리고 1927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딴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열게 됩니다.

마릴린 먼로 하면 가장 먼저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스커트가 올라가는 장면을 꼽으실 텐데요. 여기서 마릴린 먼로가 신은 신발이 바로 페라가모가 만든 ‘스틸레토 힐’입니다. 페라가모는 구두 굽이 가늘고 길어 섹시해 보이지만 체중을 지탱하기 힘들었던 기존의 힐에 금속핀을 이용해 해결함으로써 멋진 ‘스틸레토 힐’을 탄생시키죠.

영화 ‘오즈의 마법사’로 유명한 주디 갈란드도 페라가모의 고객 중 한 명이었는데요. 페라가모가 그녀를 위해 디자인한 ‘레인보우 웨지 샌들’은 7가지 색깔의 신발로 유명합니다.

세기의 미녀라 불리는 오드리 헵번도 페라가모의 고객이었습니다. 헵번은 자신의 몸매에 비해 커다란 발이 콤플렉스였고, 이에 맞는 신발을 찾는데 고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때 페라가모는 발레를 하는 그녀를 위해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로 굽이 낮은 ‘플랫 슈즈’를 만듭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이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치게 되면서 ‘플랫 슈즈’가 ‘오드리 슈즈’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죠.

이렇듯 페라가모의 신발이 슈퍼스타들의 필수 아이템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꼽으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장인 정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고객들이 구두를 신을 때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좀 더 편안한 구두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하는데요. 사람이 똑바로 서 있을 때 신체 무게중심이 머리끝에서 수직으로 내려와 발의 중심에 그대로 쏠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죠. 신발과 발의 비밀을 알게 된 페라가모는 구두 바닥에 장심을 박아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의 신발은 아름답고 독특한 디자인과 인체공학적인 설계로 편안함까지 선사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또한 페라가모는 착용자에게 꼭 맞는 신발을 만들기 위해 발 모양을 본뜬 수백 개의 목각 발본을 만들고 보관했습니다. 이러한 목각 발본을 보관하고 있는 덕에 언제든지 그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신발을 제작해 줄 수 있었죠.

페라가모에서는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배우를 선정해 목각 발본으로 그들만의 신발을 만드는 ‘슈즈 포 스타(shoes for star)’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슈즈 포 스타’에 선정된 배우는 사이즈를 측정하고 원하는 디자인과 컬러를 확인해 장인이 만든 하나뿐인 신발을 받게 됩니다. 이 배우들의 사인과 목각 발본은 페라가모 본사인 팔라초 스피니 페로니에 전시 및 보관 중인데요. 우리나라는 이미연, 김혜수, 전도연, 유지태 등이 ‘슈즈 포 스타’로 선정돼 자신만의 신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창조 열정도 빼놓을 수 없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두 힐 제작에 필요한 강철이 필요했지만 품귀현상으로 쉽게 구할 수 없었는데요. 이때 페라가모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죠. 그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을 대신해서 나무, 합성수지, 라피아 코르크, 초콜릿 상자 등으로 구두를 만들었는데요. 특히 라피아 코르크로 만든 ‘웨지 힐’ 은 특허를 받았고 지금까지 사랑받을 정도로 인기 있는 페라가모의 대표 신발입니다.

또한 페라가모는 낚싯줄의 투명 나일론 펠라민트를 엮어서 신발을 만듭니다. 구두 위쪽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인 이 신발은 ‘인비저블 샌들’로 불리게 되죠. 1947년 페라가모는 ‘인비저블 샌들’로 니먼 마커스 패션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습니다.

이외에도 샌들 안에 덧신이 들어간 키모, 작은 천 조각을 여러 장 이어 붙이는 수예 기법이 적용된 패치워크 슈즈 등 다양한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끝없는 창조에 대한 열정으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살아생전 350여 개 이상의 신발 관련 특허를 취득하죠.

‘아름다움은 모방할 수 있으나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장인 정신과 창조 열정을 보여준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1960년, 페라가모가 죽으면서 부인과 자식들이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회사를 운영하게 되는데요. 현재는 그들의 노력으로 구두뿐만 아니라 핸드백, 시계, 스카프, 남성 슈즈, 선글라스, 향수 등 다양한 제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장인 정신이 계속 이어져 혁신적인 제품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김진아 기자의 프로필 이미지

댓글0

300

댓글0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