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IT기업
통신 기업 팬택
1000만원에 팔린 이유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IT 벤처기업하면 어떤 기업이 떠오르시나요? 대표적으로 카카오톡의 카카오, 소셜커머스로 성공한 쿠팡과 티켓몬스터, 배달의 민족의 우아한 형제들 등을 꼽으실 텐데요.  오늘날 이러한 IT 벤처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스마트폰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기업은 휴대폰 및 스마트폰을 만들었던 기업인데요. 세계 최초의 지문 인식 휴대폰, 최초의 사진 전송 폴더폰, 최초의 방수 태블릿을 만드는 등 놀라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IT 벤처기업입니다. ‘엄청난 기술력이 있는데 1000만 원에 매각됐다고?’라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오늘은 어째서 이런 기업이 1000만 원에 매각됐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90년대 IT 열풍의 주인공

1990년 IT 열풍 및 벤처기업 열풍을 타고 혜성같이 등장한 통신 벤처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팬택인데요. 팬택은 1991년 박병엽 대표가 직원 6명,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설립한 회사입니다. 초창기에는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 호출기를 제조하는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이랬던 팬택이 1997년에는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 당시 외환위기가 발생했으나, 팬택은 기술 개발 및 해외시장 개척을 꾸준히 했기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바탕으로 창업 10년 만에 직원은 2000여명, 연 매출 1조 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죠.

2000년대 초반에는 휴대폰 수출의 성공을 바탕으로 현대 큐리텔, 2005년에는 ‘SKY’로 유명한 SK텔레콤의 SK 텔레텍을 인수하게 됩니다. 국내 최초의 33만 화소 카메라 핸드폰, 국내 최초 슬라이드 방식 휴대폰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핸드폰들을 출시하며 국내에서 입지를 쌓아가게 되는데요. 국내에 만족하지 못했던 팬택은 국내 휴대폰 제조사 최초로 일본 시장에 진입해 성공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던 팬택은 마침내 2005년 3조 원의 매출을 돌파하며 전 세계 휴대폰 업계 7위에 등극하게 되죠.

1차 워크아웃 발생

너무 급하게 달려온 것일까요? 팬택에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당시 프리미엄 제품군이었던 SKY 제품이 품질 논란에 시달리게 되죠. 그리고 ‘팬택’, ‘팬택 앤 큐리텔’, ‘스카이 텔레텍’의 세 회사가 전부 휴대폰이라는 한 분야만 파고든 탓에 중복투자를 비롯한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하게 되는데요. 결국 인수합병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2007년, 워크아웃이 시행되며 박병엽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사퇴하게 됩니다.

팬택은 살아남기 위해 저가 기종들을 SKY 브랜드로 출시하게 됩니다. SKY 브랜드의 인기에 편승해 저가 기종들을 판매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요. 그러나 역효과로 프리미엄 휴대폰의 대명사였던 SKY의 이미지가 추락하게 되죠. 당시 팬택의 채무는 1조 5000억 원에 이르며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부활을 꿈꾸다

그런 팬택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데요. 바로 2009년, 애플의 아이폰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에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리우스’, ‘미라크’, ‘베가’, ‘이자르’등의 스마트폰을 선보였고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베가를 브랜드화하기로 합니다. 2011년, 베가 레이서를 출시하면서 150만 대라는 판매 실적을 이뤄내게 되는데요. LG를 밀어내고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게 되죠. 베가레이서가 성공하면서 2012년, 팬택이 워크아웃을 극복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베가레이서, 양날의 검

그러나 팬택은 워크아웃을 극복하게 해준 베가레이서의 성공에 취해 드리우는 그림자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150만 대나 팔린 베가레이서에서 치명적인 발열 및 배터리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뿐만이 아니라 불친절한 A/S, 수많은 버그, 부실한 최적화 등 수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게 되죠. 소비자들은 베가레이서를 계기로 베가 시리즈를 베가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베레기’로 부르게 됐습니다. 베가레이서 이후 팬택에서는 단점을 상당 부분 개선하며 좋은 스마트폰을 만들었는데요. 그러나 이미 소비자들은 등을 돌린 상태였고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였죠.

2012년 말, 팬택의 부채비율은 2400%에 육박했습니다. 가격을 통해 베가 시리즈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지나치게 판매 장려금을 쏟아부은 탓에 적자가 쌓여버린 것이죠. 2013년도에는 삼성전자로부터 50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직원들에게 6개월 무급휴직 실시 등의 노력을 했지만 신통치 않았습니다.

단통법으로 쐐기가 박히다.

베가 시리즈 이미지가 나쁘다고 해도 단말기 보조금 덕분에 다른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싼값에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비싼 삼성 제품에 비해 베가 시리즈는 잘만 하면 20만 원 안쪽으로 구입할 수 있었기에 싼 맛에 쓰는 소비자가 적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2014년 이동통신 3사에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게 되고, 단말기 보조금의 상한선을 제한하는 일명 ‘단통법’이 시행되게 됩니다. 단통법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싼값에 베가 시리즈를 살 수 없게 됩니다. 돈을 좀 더 보태서 삼성 제품을 사는 게 나은 상황이 돼버린 것이죠.

결국 2014년 8월 2번째 워크아웃이 시작되고 법정관리가 시작됩니다. 팬택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전성기 시절을 생각나게 할 만큼 뛰어난 스마트폰을 만들었고 회사 매각 계획도 세웠죠. 하지만 품질 좋은 스마트폰을 팔고 싶어도 이전 베가 시리즈의 재고를 해소할 수 없었고, 엄청난 부채 탓에 팬택을 사고 싶어 하는 회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15년 5월, 결국 팬택은 회생 절차를 포기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신문광고를 발행합니다.

마지막 도전

곧 사라질 것 같았던 팬택에게 인수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국내 광디스크 저장 장치 업체인 옵티스와 통신 솔루션 업체인 솔리드가 합쳐서 만든 컨소시엄에서 팬택을 인수하게 되는데요. 덕분에 팬택은 법정관리를 탈출하고 1년 7개월 만에 SKY IM-100 모델을 공개하게 됩니다. 개성적인 디자인과 독특한 구성 덕분에 초기 물량이 매진되며 기분 좋은 시작을 했죠. 하지만 초반에만 좋았을 뿐이지 30만 대가 판매 목표였으나 13만 대를 판매하는데 그쳤습니다. 이것마저 재고가 쌓이게 되면서 팬택은 휴대폰 사업을 중단하고 IOT(사물인터넷)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팬택의 최후

휴대폰 사업을 접고 나서 시작한 IOT 사업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요. 결국 2017년 10월 케이앤 에이홀딩스에 1000만 원에 매각하면서 팬택의 벤처기업 신화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팬택이 가지고 있던 국내 특허 2036건, 해외 특허 1111건, 합계 3147건의 특허는 현재까지도 매각하고 있는데요. 팬택에 남아있었던 임직원의 절반가량은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팬택을 믿고 제품을 구입해준 소비자들 역시 A/S 서비스를 받기 힘들어지는 등의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한 우물만 판 기업

팬택은 자신들의 엄청난 기술력을 통해 IMF를 이겨내고 IT 벤처기업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스마트폰 시장에만 전념하면서 다른 초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을 계속했죠. 덕분에 무리하게 스마트폰을 개발하려다가 베가레이서라는 양날의 검을 만들어내면서 결국,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만약 팬택이 삼성이나 LG, 애플 같은 초거대 기업과의 경쟁을 피하고 스마트폰 시장이 아닌 다른 틈새시장을 노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팬택은 다른 분야에서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갔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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