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명성이 아니다? 2명 중 1명은 하버드급 대학간다는 고등학교

예전의 명성이 아니다, 

민사고가 존폐 위기에 선 이유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75% 정도는 고교 평준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이래,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도 차례로 고교 평준화를 받아들였죠. 하지만 '명문 고등학교'나 '고등학교 입시'가 아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자사고나 특목고 입학을 희망하고, 이들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죠. 

 

많은 학생들이 진학이고자 하는 '자사고'의 대표격으로는 1996년 김대중 정부 시절 시범적으로 도입된 자립형 사립고 '민족 사관고'를 꼽을 수 있습니다. 민사고는 1세대 자사고라는 것 외에도 독특한 교육방침과 생활 지도로 주목을 받아왔는데요. 이런 민사고가 최근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민사고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세계 속의 한국인을 양성하는 학교


출처-월간중앙

민족 사관학교를 설립한 것은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입니다. 1946년 상경해 은행원에서 택시 기사, 물류 운송 사업을 거쳐 목장 사업을 시작한 그는 사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든든한 재단과 독립성을 가진 학교를 설립하기로 마음먹는데요. 최 회장은 6년간의 철저한 준비 끝에 파스퇴르 유업을 세우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오랫동안 꿈꿔왔던 교육사업을 시작합니다. 1992년 문을 연 명재 학사에 이어, 1995년에는 민족 사관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아내죠.

 

최 회장의 교육 이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남다릅니다. '한국의 이튼 스쿨(영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을 지향한다면서도 한국 전통을 매우 강조한 커리큘럼과 교칙을 만들죠. 민사고의 교복과 예복은 한복이고, 교정에는 한옥 스타일로 지은 건물들이 많습니다. 음악시간에는 대금이나 가야금 등의 전통악기를 한 가지씩 필수로 배워야 하죠. 국립 현충원, 다산 생가, 독립기념관 견학이나 국토순례 등의 현장학습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출처-tvN 문제적 남자

이렇게 한국적인 것, 전통적인 것을 강조하는 학교라면 우리말 교육과 사용을 더욱 강조할 법도 한데 민사고는 특이하게도 '영어 상용화 정책'을 도입합니다. 국어, 국사, 국악 같은 일부 과목을 제외한 모든 수업은 영어로 이루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학생들은 영어로 대화해야 하죠. 이처럼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학교의 정책은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교훈으로 수렴됩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최 회장의 목표였던 것이죠.   

최고의 교육 환경을 갖춘 민사고


출처-베리타스 알파

목표가 원대한 만큼, 교사를 모집하고 수업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도 남다른 공을 들였습니다. 1995년 12월 교사 모집 당시 민사고에서 제시한 급여는 일반 국공립 학교의 2·3배에 달했다는데요. '뛰어난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은 어릴 때부터 생각과 역량이 남달라야 한다'며 지원자들의 초등학교생활기록부 사본까지 제출하도록 합니다. 

 

출처-중도일보

민사고의 한 학년 선발인원은 165명 이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전교생을 다 합쳐도 500 명이 채 되지 않죠. 그런데 학기마다 개설되는 수업의 개수는 무려 250개입니다. 민사고 학생들은 대학생처럼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골라 스스로 시간표를 짜는데요. 필수과목을 제외하고는 한 수업당 수강인원이 5~7 명에 그치기 때문에, 매 학기 수강신청 대란에 허덕이는 대학교들 보다 오히려 수업환경이 좋습니다. 

민사고 존폐 위기, 왜?


워낙 특별하고 뛰어난 교육 환경을 제공하다 보니, 해외에서도 민사고에 대한 관심을 나타냅니다. 민사고는 AP 시험 세계 최우수 학교에 선정되는가 하면, 세계의 명문 고등학교 모임인 G20 하이 스쿨의 정식 멤버가 되기도 합니다. 국내 명문대 진학이 아닌 아이비리그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 중 민사고 입학을 희망하는 비율도 자연스레 늘어났죠. 

 

출처-한겨레

이렇게 안팎으로 인정받던 민사고가 최근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화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와 5년마다 돌아오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맞물렸기 때문인데요. 현  정부는 재지정 평가 기준을 까다롭게 조정하고, 자사고의 학생 선발 시기를 늦추는 한편 입학시험을 면접으로만 제한하는 정책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출처-News1

다른 자사고들도 어려움에 처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민사고의 경우 상황이 조금 더 심각합니다. 애초에 자립형 사립고로 시작했기에, 재지정을 받지 못하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인데요. 60점에서 70~80점까지 올라간 재지정 기준 점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학교의 존폐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재지정 기준 강화 찬반 논쟁


출처-매일경제

자사고들, 특히 민족 사관학교가 처한 이 어려운 상황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립니다. <월간중앙>의 기사에 따르면 민사고 교장과 서울대 사범대학장을 역임한 윤정일 교수는 "일본과 동남아에서도 사립학교를 지을 때 민사고를 보러 온다"며, "민사고 같은 학교가 사라지면 강남의 중학생들은 일반고로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유학을 떠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죠. 

 

출처-에듀팡 교육뉴스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의 김은정 선임연구원은 고등학생보다 높은 중학생의 1인당 사교육비와 일반고의 3배 안팎에 이르는 자사고의 등록금을 언급하며 "자사고는 공부를 잘해도 돈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교육 불평등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특히 민사고의 연간 학비는 2589만 원으로, 일반 고등학교의 등록금이 아니라 대학 평균 등록금과 비교해도 3.9배나 많은데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민사고를 비롯한 자사고들이 '싹쓸이'하고, 그것이 명문대학교 진학률이라는 결과로 이어져 중학생들의 사교육을 더욱 부추긴다는 입장입니다. 

 

올해 상향된 평가 기준으로 재지정 평가를 받는 전국 단위 자사고는 민사고, 광양제철고, 김천고, 북일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하나고 그리고 현대 청운고입니다. 이들 자사고들은 '평가 실시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기준이 향상되어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민사고를 비롯한 8개의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들이 이번 재지정 평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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